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거대 은행 인수의 '기다림'에 기대는 독일 숄츠 정권의 애로
■ 오랜 세월 계속되는 금융업 부진을 상징하는 존재
경제규모, 구체적으로는 미국 달러화 명목 GDP(국내총생산)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된 독일이다. 독일에서 배우라는 식의 의견이 있는가 하면, 또 독일의 경제 자체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실제로, 독일의 사회는 앞날이 보이지 않는 느낌, 내향 지향을 강하게 하고 있다. 구동독 극우정당의 부상도 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독일의 코메르츠은행(방크) 인수에서도 이러한 독일의 내향 지향이 잘 드러난다. 독일의 3위 거대 은행인 코메르츠은행은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우니크레디트에 인수돼 있다. 그러나 우니크레디트에 의한 매수에, 독일의 올라프 숄츠 정권이 NO를 들이댄 것이다.
독일 경제는 오랫동안 제조업이 호조를 보인 반면 금융업은 부진했다. 그리고 금융업의 부진을 상징하는 존재가 도이체방크(은행)와 코메르츠방크였다. 코메르츠은행은 해외사업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경영 불안이 생겨 2009년 독일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2019년에는 도이체방크와의 합병 이야기도 불거졌지만 결국 결렬됐다.
이후 코메르츠은행 인수자로 자주 떠오른 것이 우니크레디트였다. 우니크레디트는 최근, 아시아 사업의 철수나 북미 사업의 합리화 등 해외 사업의 재편을 진행시키는 한편, 유럽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또 산하에는, 뮌헨에 본거지를 둔 히포 펠라인스은행(HVB)을 가지고 있어, 이미 이 은행을 통해서 독일에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재정 건전성에 골머리를 앓는 숄츠 행정부는 코메르츠은행 주식을 가급적 좋은 조건에 팔고 싶어 한다. 한편, 거대 은행이기 때문에, 매수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독일에서 사업을 하는 우니크레디트의 코메르츠은행 인수는 환영할 만한 사안 같지만 숄츠 정부는 이를 거절한다.
■ 구조조정 피하려는 숄츠 정부 의도
숄츠 정권이 우니크레디트의 코메르츠 은행 인수에 NO를 들이댄 큰 이유 중 하나로 구조조정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니크레디트는 2005년 HVB를 인수했지만 이후 인력 구조조정을 하면서 직원이 3분의 1까지 줄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중에는, 사업재편으로 산하의 다른 회사에 전직한 직원 등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코메르츠 은행을 매수했을 경우, 우니크레디트는 HVB도 갖고 있기 때문에, 코메르츠은행의 직원을 어느 정도는 정리할 것이다. 코메르츠은행은 전 세계에 약 4만2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 독일이기 때문에 1만명 규모로 독일 내 일자리가 정리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숄츠 정권은 기피하는 듯하다.
숄츠 총리를 둔 집권 사회민주당(SPD)은 중도좌파 정당으로 노동자 권리 확보를 중시한다. 경쟁 정당인 중도우파 기민련(CDU)이 집권하고 있다면 모를까 SPD가 집권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대기업의 일자리 정리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때마침 독일에서는 최대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VW)사가 국내에서 공장을 폐쇄하고 일자리를 정리하는 데 대해 독일 최대 산업별 노조인 IG메탈이 수만명 규모의 시위를 벌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IG메탈로 대표되는 노동계는 숄츠 총리가 이끄는 SPD의 최대 스폰서이기도 하다.
독일은 2025년 9월 28일 차기 총선을 앞두고 있다. 주요 정당의 지지도 조사에 비추어 보면 SPD의 패퇴는 확실한 정세이며, SPD는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최소화하느냐, 어떻게 지느냐의 관점에서 선거전에 임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그런 가운데 노조의 지지까지 잃을 수는 없다는 게 SPD의 속내일 것이다.
■ 애초부터 악화된 독일 고용상황
원래 독일의 고용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최근 8월의 실업률은 6.0%로 3개월 연속으로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이 사이에 실업자는 4만명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4~6월의 실질 GDP는 전기대비 0.1%감소로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독일의 경기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고물가의 병존)에 시달리는 유럽에서도 부진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고용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환경에서 우니크레디트의 코메르츠은행 인수를 용인하면 독일 국민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 우니크레디트가 코메르츠은행을 인수한다고 해서 일자리 정리가 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애초에 인수되지 않으면 코메르츠은행의 경영은 부진해 앞으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코메르츠은행은 단독으로 존속하기는 어렵고, 머지않아 다른 은행에 의해 매수되는 상황에 빠져 있다. 그리고, 매수 후의 고용 정리는 필연적이다. 그것은 숄츠 총리나 SPD도 이해하고 있겠지만, 한편으로 코메르츠은행의 문제를 적어도 총선까지는 미루려는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 내부 지향을 강화하는 독일
EU 역외의 나라, 특히 EU가 경계하는 중국의 은행이 독일의 코메르츠은행을 매수한다면, 확실히 경제 안보상의 우려가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은행인 우니크레디트가 코메르츠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시장점유율과의 균형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도 독일도 EU의 핵심국이며 적대 관계는 아니다.
원래 EU는, 역내에서의 사람·상품·자금(돈)의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내에 있어서는, 나라를 초월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cross border) M&A는 장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숄츠 정권이 우니크레디트에 의한 코메르츠은행을 거절하는 태도는, 독일이 내부 지향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문제가 독일에만 특유의 상황인가 하면,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EU의 실정일 것이다. 만일 이탈리아 대형은행이 프랑스 대형은행에 인수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이탈리아 여론은 역시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가 생길 경우 프랑스 여론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미 대선에서 도배가 된 것도 마찬가지지만 대기업 간 나라를 초월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cross border) M&A는 정쟁거리가 되기 쉽다. 그러한 분위기는 독일뿐 아니라, 단일시장인 EU 전체에도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것으로부터도, EU의 제도 피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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