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는 바이오 테러다!"…음모론은 망상분열 포지션의 산물
본문 바로가기
시사, 경영

"신종 코로나는 바이오 테러다!"…음모론은 망상분열 포지션의 산물

by 소식쟁이2 2022. 8. 7.

"신종 코로나는 바이오 테러다!"…음모론은 망상분열 포지션의 산물

갓 태어난 아기는, 「쾌」인가 「불쾌」인가 하는 양극단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마음은 '쾌·불쾌'의 감각을 바탕으로 발달해 나가며 영유아의 시기를 지나도 그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다만 때로는 '아기 때로 되돌아가기'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는 깨닫기 어려운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 알아보자.

◇ 마음은 성장해도 '아기 때로 되돌아가기'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과제를 극복하고 경험을 쌓음으로써 마음은 성장하지만 때로는 아기와 같은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다.

아기가 「쾌」인가 「불쾌」인가의 양극단의 세계에서 살고 있듯이, 아기에게 있어서의 「상대」(대상이라고 부른다)도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으로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또한 아기에게 대상은 아직 '엄마' 등의 인물을 전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좋은 대상은 우유를 주는 엄마의 유방이나 안아주는 팔, 체온 등 각 부분의 감각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불쾌하고 울 때는 모든 것이 자신을 공격해 오는 나쁜 세상이고,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아기 때의 "자신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세계를 "망상분열 포지션"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음이 자라면서 어머니의 손이나 팔과 부분적으로 느끼던 것들이 한 인간으로 느껴지게 되고 공격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 때까지 나아오는 것을 '억울 포지션'이라고 한다. 왜 포지션이라고 하냐면 이것은 마음의 위치나 상태가 시시각각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이 성장하면 망상분열 포지션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른이 되어도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되거나 불안한 상황에 빠졌을 때에도 망상분열 포지션이 되는, 즉 아기 상태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버릴 수 있다.

◇ 음모론은 망상분열 포지션의 산물
기억에 새로운 곳에서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만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매우 불안하고 피해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고 그것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음모론이 있었다. 어느 나라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뿌렸다는 등의 소문이다.

이와 같이 불안이 높아졌을 때는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집단 의식의 힘(역동)의 움직임이 있다. 이것이 집단 안에서 '그렇다, 그렇다'고 동의를 받으면 음모론으로 확산된다.

이런 심성을 우리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망상분열 포지션은 작은 조직에서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무엇이 안 되는지를 논의해도 유효한 해법을 찾지 못하거나 하면 한 인물을 희생양으로 삼아 다같이 책망하기도 한다.

◇ 망상분열 포지션에서 회복하려면?
그러나 마음이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불안상태에서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곧 이성적,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보통상태로 회복된다.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어떻게 이 이성적,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을 회복하느냐,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아기 시절의 마음과 같은 원시적이고 충동에 가까운 상태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켜 나가는 것은 마음의 성장이라고 한다.

미숙한 아기의 세계는 '좋다'와 '나쁘다'로 양분된 극단적인 체험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체험은 이상적인 이러한 무한한 만족이 되는 반면, '나쁘다'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파멸적인 체험이다. 성장에 따라 이성적, 현실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다소의 불쾌함은 참을 수 있게 되고 피해의식을 갖지 않게 된다. 엄마도 한 사람으로 한계가 있고, 사시사철 자기 뒷바라지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슬픔을 함께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자신만을 봐주는 이상적인 상대이거나, 혹은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공격자, 박해자로 양분된 채로 느껴지며, 무엇인가 자신에게 불안이나 불쾌감이 있다고 공격받고 있다, 박해받고 있다고 느낀다.

◇ 마음은 '갈등'을 거쳐 회복되어 간다.
쾌와 불쾌감을 확실히 느끼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상태가 회복되기까지는 마음 속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쾌감 원칙과 현실 원칙'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갈등이라고 했다. 쾌감 원칙이란 쾌감을 추구하여 고통을 싫어하거나 울부짖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가려면 쾌만을 찾을 수는 없다. 때로는 참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의 한계를 잘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회적인 상태를 현실 원칙이라고 한다.

위에서 살펴본 망상분열 포지션과 우울 포지션 사이에도 갈등은 생긴다. 괴롭다, 괴롭다,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엄마는 지독한 사람, 악마다. 큰 소리로 울고 싶다, 심한 엄마에게 불평하고 싶다, 보복하고 싶다(망상분열 포지션).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엄마는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슬퍼할지도 모른다. 나를 돌볼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것은 곤란하다(억울 포지션). 하지만 나도 괴롭다.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갈등이다.

우울 포지션으로는 엄마의 현실, 한계가 보인다. 쾌·불쾌 원칙만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는 망상분열 포지션에 가깝다.

◇ 갈등이란 무엇인가? 프로이트의 모델로부터 생각해 보자.
마음은 실체가 없으므로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마음이 '자아, 초자아, 이드'로 이루어져 있다는 모델을 생각해 보자.

초자아는 규범이라든가 이상(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 이드는 충동도 포함한 본능이나 욕구라고 하는 원시적인 부분, 그리고 자아는 초자아와 이드와 외계와의 조정역할이다.

초자아는 규범이라든가 이상에 관한 부분이지만 반드시 논리적·이성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성적이지 않은 과도한 초자아가 신경증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상적인,완벽한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면 그렇게 될 수 없는 자신을 너무 공격해서 우울상태ㅗ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그다지 이성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초자아는 자신의 이상상과도 관련되어 있다. 금지와 억압을 포함하여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포섭되어 발달해 온 것이다. 단지 어릴 때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초자아도 처음에는 미숙하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의 모습은 절대적이고 융통성이 없는 엄격한 것이다, 즉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실패하면, 잘 되지 않으면 벌써 큰일이 난다, 세계가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등 비현실적으로 강조된 것이다. 그것이 서서히 어른이 됨에 따라 유연하게, 현실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다.

이 모델로 보면 이도는 쾌감 원칙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쾌감 원칙만으로 어른이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본능대로 행동하면 법을 위반하거나 주변에 피해를 끼치고, "너 때문이야"네가 나쁘다고 남을 공격하거나 상처를 줄 수도 있어. 그렇게 하면 사회생활이 할 수 없다. 물론 초자아로 금지가 걸리지만 그것이 또 미숙하고 과격한 초자아이면 필요 이상으로 갈등이 강해지는 경우도 있게 된다. 그래서 자아가 발달하고 현실과의 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이니까 울부 짖는다, 그러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수용하고 참아야 한다. 여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고 살아있는 한 발생한다.

◇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
이렇게 쓰면 참을 수 없는 사람은 마음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사람이라고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참는 게 좋은 것이지 어른이기 때문라고 단순히 단언할 수 없다.

반대로 너무 참는 사람도 마음의 성장의 프로세스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매우 세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거나 우울해지기 쉬운 경우, 충분히 돌봐주지 않는 등 참아야 할 일도 있다. 또 형제가 많은 가정의 큰딸이나 큰아들일 경우에는 친구들과 놀고 싶은 것을 참고 집안일을 도와 주거나 아랫형제를 돌봐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너무 참는 어른이 되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직장에서도 남을 잘 돌보고 모두가 싫어하는 일을 맡거나 자기만 휴일 출근을 해서 심신이 지쳐간다. 주위의 평판은 좋지만 본인은 몸을 망치거나 마음이 피폐해져 한계를 넘어섰을 때에는 마음의 병에 걸리게 된다.

그래서 갈등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의 균형이 매우 중요해진다. 심신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그냥 참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를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