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후에도 존재하고 싶나? 로봇이 흔드는 '인간'의 정의 '죽어야 할 규정' 때문에 찾는 영속적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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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영

당신은 사후에도 존재하고 싶나? 로봇이 흔드는 '인간'의 정의 '죽어야 할 규정' 때문에 찾는 영속적 인격

by 소식쟁이2 2022. 7. 29.

당신은 사후에도 존재하고 싶나? 로봇이 흔드는 '인간'의 정의 '죽어야 할 규정' 때문에 찾는 영속적 인격

"너는 인간이야? 아니면 로봇이야?」.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로봇'이 넘쳐나고 있다. 가전이나 자동차에 탑재된 AI를 비롯해 실례를 올리면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사망자의 인격을 AI로 가상적으로 소생시켜 다양한 사회활동에 동원하는 시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로봇과 어떻게 다른가. 일본에서 정리한 자료가 있어 요약해 보았다.

■ 인간의 사후에도 계속 살아있는 디지털 인격
지난 6월 ALS(근위축성 측삭경화증)를 앓던 영국의 로봇 과학자 피터 스콧 모건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 마지막까지 '자유로운 정신'과 '불편한 육체'의 불균형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실험을 자기 자신에게 시도했고, 그러한 삶의 방식을 '휴먼사이보그'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디지털 기술을 구사해, 개인이나 사망자의 인격을 인위적으로 부활(復活)시키는 「디지털 다음 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가까운 미래에 말투와 몸짓, 성격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똑같이 행동하는 AI '디지털 인격'을 구하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SNS상에서 간단한 교환뿐만 아니라 쇼핑이나 웹 회의 참석 등 자기자신 대신 사소한 일도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사후 부활(復活) 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사후에 인격의 존속(存続)이 중대한 쟁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건 박사는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보다 상상력을 조금 앞서 있기 때문이다.

■ 죽은 피터 스콧 모건 박사가 제시한 세 가지 키워드
모건 박사는 생전 반려자인 프랜시스와의 사이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AI로 움직이는 내 아바타가 내 상상이 미치는 한 지혜로움을 터득했다면? 그리고 그 후에 내 수명이 다했다면?
그런 거짓말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을 때 내 AI를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최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프란시스의 뜻이다. '내가 가버린 뒤에도 정말 나랑 같이 있고 싶어?'
물론 너를 잃는 것은 두렵다. 그것이 너의 일부일지라도.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네가 계속 존재한다면 너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것만은 말해 둔다」--『NEO HUMAN 네오 휴먼 궁극의 자유를 얻는 미래』 후지타 미나코 옮김, 동양경제신보사>

여기에 「감정」과「경계」와「인격」이라고 하는 세 개의 키워드가 나와 있는 것을 알수 있다. 

■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
일본의 한 특별전시회에서 특히 많은 아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전시물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기대어 사랑받기 위해 개발된 가족형 로봇 LOVOT. 그리고 인간과 접촉함으로써 성장하고 개성이 생기는 개를 본뜬 자율형 로봇 aibo(아이보) 등이다.

이 로봇들은 독특한 행동에서 빚어지는 친근함, 사랑스러움으로 인해 우리 곁에 강한 감정을 생기게 한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기물이냐 유기물이냐보다 '마음을 움직인다'에 로봇의 존재 의의가 달려 있다.

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로봇이 사람들의 감정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채우는 데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을 평가하며 로봇화의 시대(로보틱 모멘트)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로봇을 애완동물로서뿐만 아니라 친구나 신뢰할 수 있는 심복, 연애 상대로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로봇과 시간을 공유할 때 인간인 우리는 인공지능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연결돼 있는데도 고독 인생을 풍요롭게 할 인터넷의 정체" 와타리 케이코 옮김, 다이아몬드사">

게다가 2014년에 일본에서 개봉한 SF 연애 영화 「her/세계에서 하나의 그녀」(감독·각본: 스파이크·존스, 미국, 2013년)에서 그려진 세계를 요약하면, 맥박이나 스트레스값이라고 하는, 개인의 바이탈(생체) 데이터등에서 감정을 읽는 기술이 진화한 끝에,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를 추측할 수 있다.

주인공 시어도어 투옴블리(호아킨 피닉스)는 인격을 갖춘 최신형 OS 서맨사(목소리 스칼렛 요한슨)를 사랑하게 된다. 어떤 때라도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위로, 격려, 조언해 준다--왜냐하면 누구보다 당신의 데이터를 파악해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훨씬 인간다운 행동으로 우리의 감정을 들썩이게 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러한 로봇의 자세는 이제 영화라는 허구의 수평선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무기물이 자비심을 불러일으키는 신기함
일본의 특별전시장에는, 이른바 애완 로봇적인 것과는 다른 의도로 만들어진, 이색적인 「약한 로봇」시리즈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마음의 기민함을 숙지한 절묘한 움직임으로 우리에게 자비심과 그에 따른 행동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끝없는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일본 도요하시기술과학대학 ICD-LAB의 「iBones(아이 본즈)」는, 큰 등뼈와 같은 부품을 쌓아 올린 형태의 볼품없는 로봇이다. 항상 움직임이 쭈뼛쭈뼛하고, 손을 내밀면 의문의 액체를 몇 방울 뿌린다. 액체의 내용물은 소독용 알코올이지만, 특이한 동물과 만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ICD-LAB가 개발한 '쓰레기통 로봇'은 자기 힘으로 쓰레기를 줍지 못한다. 하지만 쓰레기를 주워달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쓰레기를 던져 넣으면 즐거운 듯 들떠는 아이 같은 목소리를 낸단다.

개발자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고 굳이 나약한 로봇으로 만들어 내가 도와줘야지하는 마음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이때 「생물다움」과 커뮤니케이션의 관계성을 둘러싼, 매우 시사하는 논점이 얼마든지 있다.

틀림없이, 자신에게 편안함을 주는 생물, 자신을 필요로 해 주고 있는 생물로서의 실재감, 리얼리티를 느끼고 있다. 로봇의 내부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에 관계없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감정이 진실--감정에 리얼도 가짜도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 몸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
모건 박사가 생각했던 아바타는 인간이 육체 밖으로 나가는, 즉 신체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디지털 인격이었다. 육체가 없어져도 디지털 인격으로서의 「그」만은 계속 살아, 친구들과 채팅하거나 논문을 쓰거나 라이브 방송으로 근황 보고까지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육체는 보통 조금씩 쇠약해져 가는 법이다. 내장이나 뼈, 근육이 부분적으로 로봇기술로 대체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일인데, 방대한 수의 나노로봇이 인체복구를 시작하면서 생체로봇이 실용화된다면 어떨까? 

뇌 이외의 부품을 대부분 교체한 인간이 나온다면? 뇌의 일부를 손상시키고 의식을 잃는 식물상태가 된 인물의 인격을 모두 AI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면?

여기부터는 고대 그리스의 우화 '테세우스의 배'가 생명체에도 적용된다.

테세우스의 배란 어떤 배의 모든 부품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을 때, 그 배와 수선 이전의 배가 동일한 것으로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얽힌 비유이다. 요약하자면 로봇이나 AI의 존재가 '어디부터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이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일깨우는 것이다.

인공적인 몸(신체)을 가지고 인공적인 두뇌로 계속 사고하는 불멸의 아바타는 모건 박사가 열망했던 것이었다. 이때 앞에서 서술한 '마음을 움직이느냐 마느냐'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명백할 것이다.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에 우리는 감격하고, 단순한 머신으로 생각되지 않고, 인격을 가지는 존재로서 자애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로봇이나 AI가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정의라는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

■ 로봇이 인간의 정의를 바꿀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인격이란 무엇인가. 로봇과 어떻게 다른가. 

로봇이 우리와 틀림없는 유연한 관계에 있고 우리의 연장선상에 자리잡고 있는 '무섭고 인간적인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로봇은 우리의 '감정'을 심하게 흔들고 신체적·정신적 '경계'조차 모호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모방한 다른 어떤 조형물보다 인간답다라는 관념을 사람들에게서 끌어낼 수 있다. 어쩌면 지성적이라고 평가받는 동물들보다 살아있는 세포가 하나도 없는 기계 쪽에 넋이 깃든다고 여겨 법적 권리를 획득할 미래도 있을 수 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아주 흥미로운 재판 판결이 있다.

뉴욕 시내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암컷 코끼리 해피(Happy)에 인격이 있다며 동물애호단체가 법원에 인신보호영장을 발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뉴욕주 대법원은 이에 대해 '해피'는 높은 지성을 갖췄지만 법적으로 '사람'의 정의는 충족하지 못해 위법한 구속대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재판에서는 놀랍게도 대법관 7명 중 2명이 코끼리에게 인격을 인정한 거다. 앞으로 인간 이외의 생물에게도 인격을 찾으려는 기운이 높아지면 이번 판단이 뒤집힐 미래가 올 수도 있다.

그럼 이게 코끼리가 아니라 모건 박사가 꿈꾸던 불멸의 아바타라면 어떨까? 인격을 인정하는 것의 심리적 장벽이 동물들의 경우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다.

디지털 인격이 스스로와 동일화되고 상품화(일반화)되어 일상에 녹아든다. 그런 세계에서,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 자신이나 타인의 인격을 미래 영겁하게 존속(存続)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모건 박사와 프랜시스처럼 말이다.

이것은 개인에 얽힌 단순한 「디지털 자산」등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연장」으로서 인지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간의 정의를 고쳐 쓸지도 모르는 미지에 대한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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