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대'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인가? 성경과 역사로 풀어보면 '지금'의 세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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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영

(2) '유대'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인가? 성경과 역사로 풀어보면 '지금'의 세계가 보인다

by 소식쟁이2 2024. 9. 29.

(2) '유대'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인가? 성경과 역사로 풀어보면 '지금'의 세계가 보인다

 

(앞편에 이어서)

 

◆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신전을 잃은 흩어진 유대 사회에서는 200년경 다윗 왕의 후손이자 유대 사회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라비 유다 하나시가 생활원리의 규범이 되는 구전 율법인 미슈나를 편찬했다.
이를 바탕으로 랍비들의 법 해석이 축척되어 쌓였고, 이윽고 4세기 말 및 5세기 말에 각각 구전 율법의 팔레스타인 탈무드,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결집되었다.
이렇게 해서 유대 사회는 과거의 신전 제사를 벗어나 랍비들의 지도에 의한 성경(성문 율법)이나 탈무드(구전 율법)의 연구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변화되어 갔다.

이 때문에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대교는 랍비 유대교로 불린다. 랍비 유대교의 특징은 두 가지 토라(율법)라는 믿음이다.
즉 하나님의 뜻은 성문토라(히브리어 성경)와 구전토라에 의해 이중으로 모세에게 계시되었다고 하며, 성문토라에 구속되면서도 구전토라에 의해 그것을 유연하게 해석함으로써 환경이 다른 새로운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기독교 국가나 이슬람 국가에서 거주 국민으로서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대의 율법과 종교적 전통을 지켜냄으로써 이주지 사회에 녹아들지 않고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했다. 이것이 각지에서 유대인들이 편견과 박해에 노출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유대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 사회에 필수적인 제도가 이미 고대부터 랍비들에 의해 명확하게 의식되고 정의되고 있었다. 탈무드에 따르면, 그것은 현자의 후손이 사는 사회에 필요한 10가지 조건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①베이트 딘(3명으로 구성된 법정), ②자선을 위한 기금, ③베이트 크네세토(시나고그유대인회당), ④공중목욕탕, ⑤공중화장실, ⑥의사, ⑦외과의사, ⑧서기(書記), ⑨자격증을 가진 가축 도살자 및 ⑩어린이 교사이다.

각지의 이러한 공동체로 이루어진 유대 사회의 유대인은, 사산조 페르시아나 구로마 제국 영내 등에서 농업이나 상업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7세기 이후 두 제국의 판도의 대부분이 이슬람세력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 때문에 당시 세계 유대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 세계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광활한 이슬람 세계에서 비무슬림은 이슬람법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인두세(人頭稅)와 토지세를 내면 생명, 재산, 신앙의 자유와 공동체별 자치를 보장받았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슬람에 의한 지배를 환영했고, 이윽고 그 중 상당수가 이농하여 도시 거주자가 되어 상업, 수공업과 금융업을 비롯한 여러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슬람은 종교, 종파, 민족 등의 차이를 넘어 각자의 장점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크게 활약해 이슬람 세계의 번영에 기여했다.
디아스포라의 유대 사회가 어떻게 횡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이슬람 세계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티베리아)에 존재했던 유대교 학원(예시바)의 학원장(가온)의 지도 아래 랍비들이 각지의 공동체에서 들어오는 율법에 대한 문의에 대해 종교규범에 맞는 답변을 해주었다.
그 결과 그동안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학원 주변에서만 통용되던 랍비 유대교의 탈무드 전통이 원격지 공동체에까지 점차 침투해 갔고,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각지의 공동체 상호교류와 정신적 유대가 크게 촉진되었다.

이것이 각지의 유대인이 다양한 활동을 할 때의 강력한 네트워크로서 기능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특히 11세기 말부터 시작된 십자군 파견 무렵부터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를 배신한 유다에 대한 증오를 빗대는 형태로 이교도 토벌이라는 이름으로 유대인 박해가 격화돼 라인강 유역의 유대공동체 등이 습격당했다.
또한 이 무렵부터 유대인들은 모든 직업조합에서 배제되었고, 기독교인들에게 금지되었던 금융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흑사병 유행과 의식살인 혐의도 박해의 원인이 됐다.

1492년 이슬람세력을 소탕해 기독교에 의한 국토통일을 완성한 스페인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추방령이 내려져 개종이나 추방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16세기 중반에 유대인을 집단격리하는 거주지역 게토가 나타나 서구 각지로 퍼져나갔다.
한편 주로 독일을 중심으로 서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이주해 번영했지만 17세기 중반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다.

수많은 차별·박해를 받아온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 스스로에 의한 해방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유대인 해방의 계기가 된 것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에 의한 게토 해체에 따른 유대인 해방과 시민권의 부여, 그리고 그 조류의 서유럽 각국으로의 전파였다.

그리하여 서구 각지에서 유대인의 해방이 진행되어 각계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써 유대인 차별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의 각계 진출은 주변의 질투와 반감을 샀고, 19세기 후반 서구에서 민족주의가 활발해지면서 반유대주의가 대두되었다.

또 러시아에서는 거듭된 포그롬(유대인 대학살)으로 많은 유대인이 희생됐다.
그런 가운데, 1894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사건(유대인 육군 대위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누명사건)을 계기로, 유대인은 그 고장 시온의 언덕에 귀환해 스스로의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고 하는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났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러시아에서 다시 포그롬이 발생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시온주의자들이 후에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제2차 대전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의 유대인 목숨을 앗아가는 큰 비극을 겪었다. 거듭되는 포그롬이나 홀로코스트에 대항하는 형태로 시오니즘이 발전해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많은 유대인이 이민을 갔다.

1948년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이 지역에 거주하던 아랍인(팔레스타인인)이 배제되면서 많은 사회적·정치적 문제가 생겼다.
이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중동지역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 유대인은 왜 '우수'한가
유대인은 흔히 우수한 인물이나 대부호를 많이 배출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유대인들은 종종 박해나 추방을 받았기 때문에 운반이 가능한 것은 자신의 머리에 넣어두는 지식이나 지혜라고 하여 교육이나 학문을 매우 존중하는 정신이나 환경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히브리어성경에 등장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핵심을 좁혀 생각해 볼 수 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은 축복을 구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욕심이 많았다. 야곱은 형 에사우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이삭을 속여 그 축복을 얻었다.
이어 나중에 그는 신(神)과 씨름했고, 이에 승리하자마자 신(神0에 의한 축복을 요구했다. 그리고 신의 축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개명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스라엘은 신(神)과 사람(복수형)과 싸우고 이를 극복하는 자를 뜻한다.

유대인들은 주로 지적 영역에서 항상 신(神)과 씨름하며, 유대의 신은 이에 대해 잘 대해 준다. 야곱과 신(神)과 사람들의 격투로 상징되는 정신활동을 통해 유대인의 지적활동은 비할 데 없는 심오함과 독자성을 가지기에 이른다.

야곱은 형 에사우와 화해하고 축복을 갚았지만, 이 격투는 현재의 유대인에게 계승되고 있다.
문제는 축복으로서의 신(神)의 뜻 해석이다. 유대인들이 축복을 자기 이익으로만 해석한다면 세상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축복을 자기 이익 뿐만 아니라 이타적인 것으로 본다면 아직 거기에 희망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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