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은 있지만 나라는 없다. 단순한 '종교갈등'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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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영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은 있지만 나라는 없다. 단순한 '종교갈등'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

by 소식쟁이2 2024. 5. 1.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은 있지만 나라는 없다. 단순한 '종교갈등'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의 근간에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 이것은 '무슬림과 유대교도의 종교 대립'이 아니다. 중동 정세의 복잡한 과거, 배경을 알기 쉽게 해설하는 일본의 서적 「과연 그랬구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なるほどそうだったのか!!パレスチナとイスラエル)」에서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은, 팔레스타인에 이미 생활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인」과 유럽에서 이주한 「유대인」의 분쟁
팔레스타인이란 땅은 있지만 팔레스타인이란 나라는 없다. 그곳에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이다. 왜 지명은 있는데 그 지명의 나라가 없는지 그 경위를 정리해 본다.

"2000년에 걸친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종교 대립", 이러한 말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 팔레스타인 문제다. 하지만, 이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교가 성립된 것은 600년대이다. 즉, 7세기이며, 그 역사는 대략 1400년 정도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서로 싸우고 있을 리 없다.

문제가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는 기독교인들도 많이 살고 있어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립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무례한 것이다. 애당초 기독교는 이 땅에서 일어났고, 그 가르침을 계속 지킨 사람들이 현재도 생활하고 있다. 너무 단순하고 알기 쉬운 이야기는 살짝 위험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언제쯤 일어나고 무엇이 문제일까. 그리고 누구와 누가, 무엇을 다투고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땅에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다.

유대인들의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을 시오니즘이라고 한다. 이것은 시온산의 "시온(Zion)"과 "이즘(ism)"을 합친 말이다. 이즘은 주의라는 뜻의 말이다. 주의라는 것은 이 경우에는 어떤 정치적 생각을 위한 노력이다. 시온산(예루살렘 부근의 언덕 이름)은 팔레스타인의 중심도시인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다. 예루살렘은 해발 835m 정도의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유럽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들어오자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이다. 이것은, 즉 약 120년간의 분쟁이다.

◆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이주한 것은 '민족주의'의 박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렇다면 왜 유럽의 유대인들은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를 생각하게 되었을까. 유럽에서 19세기 말이 되자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답은 이 시기에 유럽에 민족주의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민족주의가 유대인의 박해를 야기했다. 이 민족주의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민족주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1) 인류라는 것은 민족이라는 단위로 분류할 수 있다
(2) 각 민족이 독자적인 국가를 가져야 한다. 이것을 민족자결의 원칙이라고 한다
(3) 개인은 속한 민족의 발전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개인의 최고의 생활방식은 자기 민족의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자기 민족이 국가를 갖고 있지 않을 경우에는 그 건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민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때로는 목숨까지도 바친다.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행위가 민족주의에서는 최고의 영예로 꼽힌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고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독일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등이 이 민족이라는 단위에 해당한다.

이것은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집단의 구성원의 추측에 의해서 결정된다. 같은 말을 하거나 같은 종교를 믿으면 이런 믿음이 쉬워진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고조되자, 다수파의 기독교도는, 소수파의 유대교도를 배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유대인을 같은 민족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즉,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높아진 것이다.

유대인이 민족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따돌림을 당한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자. 그러면 거기서는 유대교도라는 종교의 차이 때문에 차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시오니즘을 낳은 사고방식이다.

◆ 시오니즘 부추긴 제국주의 바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상한 발상이다.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유럽인들이 옮겨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전부터 살던 사람들의 사정 등은 그곳에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왜 이런 발상이 나왔을까.

그것은 19세기 말이 민족주의의 시대이자 제국주의의 시대였기 때문이다.제국주의란 유럽의 강대국이, 또는 미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를 자신들의 형편만으로 자유롭게 분할하고 지배하는 구도를 말한다.

이 시기의 유럽이나 미국은, 마음대로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의 발상이었기 때문에, 현지(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향을 무시한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의 국가 건설이 시작되었다. 시오니즘을 부추긴 제2의 바람은 제국주의였다.

시오니즘을 추진하는 사람들을 시오니스트라고 부른다.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지주들로부터 땅을 구입해 이주했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자 팔레스타인 지주의 땅을 일구던 팔레스타인 농민은 땅을 쫓기는 결과가 되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땅을 경작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을 고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인식이 있었다.

유럽에서 유대인 사회는 남달랐다. 왜냐하면 땅에 발붙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 즉 농민이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의 '보통' 사회에서는 많은 농민이 있었고, 그리고 비교적 소수의 상인 등이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는 반대였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직업은 돈벌이, 장사꾼, 중도매인, 의사, 변호사, 연구자, 예술가, 음악가였다. 즉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으로만 살았다. 이는 유대인들이 차별받은 결과였다.

◆ 제3의 바람 '사회주의'가 팔레스타인인의 배제를 낳았다, 불안정한 역삼각형 구조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거주지역을 한정하고 있었고 그 밖에는 살 수 없었다. 이러한 유대인 지구를 게토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농민이 될 리도 없었다. 유대인 사회는 땅이 발이 닿지 않은 불안정한 역삼각형이었다.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에서는 평범한 삼각형 사회 건설을 원했다. 즉, 많은 유대인이 농민이 되어 땅에 발이 붙이고 생활을 한다. 그것이 시온주의자들의 농업 애착의 원천이었다.

자기 손으로 땅을 일구고 경작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오니스트의 꿈이었다. 이 생각에 박차를 가한 것이 역시 이 시기 유럽의 지적인 풍조의 사회주의였다. 이 사회주의가 민족주의, 제국주의와 함께 시오니즘을 몰고 온 제3의 바람이다.

이 사상은 착취(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을 싼 임금으로 고용하는 것)를 악으로 여긴다. 이상은 착취가 없는 사회이며, 사유재산의 소유에 부정적이다.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부재 지주(그 땅에 살지 않는 지주) 등으로부터 땅을 사들여 그곳에 키부츠라 하는 공동농장 등을 조직해 공동작업에 종사했다. 그곳에서는 각자 최소한의 사유재산만 보유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지주에게 고용되었던 팔레스타인 소작농이다. 시온주의자들은 직접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소작농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온주의자가 땅을 구입하자 거기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이 배제됐다.

유럽의 앞선 농업기술과 자본이 현지 노동력(팔레스타인인)과 융합되지는 않았다. 유럽의 나대지인 키부츠 등의 농장이 전통적인 팔레스타인 사회와 접점도 없이 병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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