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모사드 ... 하마스, 헤즈볼라 지도자 살해 첩보기관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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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영

이스라엘 모사드 ... 하마스, 헤즈볼라 지도자 살해 첩보기관의 '신화'

by 소식쟁이2 2024. 8. 14.

이스라엘 모사드 ... 하마스, 헤즈볼라 지도자 살해 첩보기관의 '신화'

■ '정보의 가치'를 이해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단지 '싸울 결의'가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싸우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의 전쟁 초기에는 병력과 장비가 우세한 아랍군이 전투를 유리하게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버그먼의 『이스라엘 첩보기관 암살작전 전사』에 따르면 초대 총리였던 벤구리온은 몇 년 전부터 아랍 국가 내에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전쟁 직전에는 그 정보 부문에서 5월 15일 공격이 있을 것임을 미리 알고는 공격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전쟁 준비가 되어 있고 유대인들은 재빨리 부대를 재편성해 반격으로 하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도움을 주려 달려갔고, 결국 유엔 분할안에서 할당된 영토보다 더 넓은 땅을 획득해 승리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이스라엘에 중요한 다른 논리를 낳게 됩니다. 즉, 벤구리온에게 있어서, 그리고 갓 성립한 이스라엘이라는 신생 국가에 있어서 「정보야말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라고 하는 논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중동 최강이라는 강력한 군과 세계 최고수준의 정보기관을 이스라엘이 키워온 배경에 있는 논리입니다.

■ '이스라엘의 최강 방패' 모사드란 무엇인가
벤구리온 총리는 전쟁 후, 이들 3개의 인텔리전스의 세 기둥의 근원이 된 기관을 설립합니다. 이스라엘 참모본부 첩보국 '아만', 총보안청 '신 베토', 그리고 해외 첩보활동을 하는 정치국입니다. 정치국은 나중에 세계 최강의 스파이 조직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될 첩보특무청 모사드입니다.

버그먼이 책에서 분석한 대로, 특히 모사드는 신생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의 최강 방패'로서의 역할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당시의 벤구리온은 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이들 모든 기관을 혼자서 통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버그만에 따르면 정치권력이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는 국민들에게는 가려졌고, 공개석상에서 신 베토나 모사드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1960년대까지 금지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엄하게 은닉될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첩보기관은 공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법적인 뒷받침도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3개 기관은 법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안전을 지킨다는 대의명분 아래 암살과 비밀공작 등의 불법행위를 차례로 저지르게 됩니다.

■ 학살 주범격 아이히만 잡은 집념과 전투력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첩보기관은 총리의 승인이 있으면 납치나 암살도 합니다. 이번 가자에서의 공습이나 작전도 하마스 간부의 살해를 목적으로 한 공격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생각은 '적은 세계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내 살해한다'는 논리입니다. 동포를 죽인 자에게는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것입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에도 공격을 감행한 하마스 전투원은 전원을 찾아내 살해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이 '적은 반드시 찾아내 살해한다'는 이스라엘의 논리를 세계에 알린 모사드의 비밀작전이 있습니다. 제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 학살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납치와 처형입니다.

1960년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의 가명으로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발각됩니다. 모사드는 현지에서 아이히만을 납치해 국영 엘알항공으로 몰래 이스라엘까지 이송했습니다. 그 후 아이히만은 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되었습니다.

■ 뮌헨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선수단 살해사건'
이 아이히만 재판에 의해, 그때까지 별로 밝혀지지 않았던 홀로코스트의 실태가 밝혀졌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상세한 사실관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이히만 재판에서 그 처참한 실태가 이스라엘 사회에 다시 공유되면서 동시에 유대 민족의 정체성이 민족의 비극을 통해 강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아이히만의 처형 외에도 각지로 도망친 다른 전직 나치 간부들이 모사드의 요원들에 의해 다수 살해되었습니다. 나치에 대한 보복과 함께 유명한 것이 독일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이 살해된 사건에 대한 보복입니다.

1972년 뮌헨선수촌에 침입한 팔레스타인 과격파 조직 '검은 9월' 조직원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 여러 선수가 살해되고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스라엘군의 엘리트 특수부대 사이에레트 마트칼은 즉시 구출작전을 위해 출동준비를 하지만 독일 정부로부터 입국을 허가받지 못해 사건 해결은 독일 치안당국에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독일 치안 당국의 실수 때문에 인질 11명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홀로코스트의 현장이 된 독일 땅에서 또다시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충격이 확산됐습니다.

■ "모사드는 언제 어떤 장소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
고르다 메이어 당시 총리는 이스라엘 의회에서 '우리는 찾는 대로 테러조직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와 평화에 대한 의무다"라며 복수를 맹세합니다.

그 후 모사드 등 첩보기관은 군과도 연계해 '검은 9월' 조직원을 차례로 암살해 나갔습니다. 이 사실은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의 주제가 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모사드는 일찌감치 이듬해인 1973년 군과의 합동으로 '젊은 날의 청춘' 작전을 발동해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던 뮌헨 사건의 주모자였던 3명의 검은 9월 지도자를 암살합니다.

버그먼의 책에 따르면 사전에 위조여권으로 여러 공작원이 베이루트에 들어가 정보를 모아 목표물이 사는 주택 등을 확인하고, 작전 당일에는 해군 미사일 함정에서 고무보트에 나눠 탄 70여 명의 특수부대원이 현지에 올라 총격전을 벌여 3명의 표적 전원을 살해하는 공전의 규모의 암살작전이었습니다. 바로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복수를 실행한 것입니다.

버그먼은 이 작전의 성공으로 모사드는 언제 어떤 장소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는 신화가 아랍 세계에 퍼져 나갔다고 쓰고 있습니다.

■ 드론 이용해 하마스·헤즈볼라 간부 암살
모사드는 1979년 뮌헨 사태 이후 무려 7년 만에 '검은 9월'의 작전담당관이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부였던 알리 하산 살라메를 베이루트에서 자동차 폭탄으로 암살한 바 있습니다. 살라메는 뮌헨사건 이외에도 비행기 납치사건 등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공격에 관여하였다고 모사드는 단정했습니다.

이러한 첩보기관과 군이 연계한 군사행동 외에도 이스라엘 국내외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폭탄테러 등이 일어날 때마다 보복으로 수많은 암살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PLO의 주류 파타의 지도부, 하마스의 간부나 헤즈볼라의 지도자를 폭살하거나 드론공격, 헬기로의 미사일 공격 등으로 차례차례 살해해 왔습니다. 무인기 드론을 이렇게 많은 암살에 본격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국가는 이스라엘입니다.

■ 지금까지 연루된 암살은 추산 2700건이나
암살은 총리를 비롯한 정부 내에서 논의되어 결정되지만, 역사적으로도 그 수는 너무 많으며, 일부  정보기관의 전문가는 그동안 2700건에 가까이 실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뭔헨사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공격에 대한 보복은 물론 이스라엘 국내에서 반복되는 폭탄테러 등에 대해 보복하는 패턴도 많아 암살은 이스라엘 정부의 일상적인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2024년 5월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추락 사고로 사망한 직후에는 이스라엘 정부관리가 "우리가 아니다"라며 암살을 부인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이런 보도가 나올 정도로 이스라엘은 암살작전을 통상적인 정책 수단으로 사용하는 국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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