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부패 캠페인' 본질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권력투쟁' 지적
일찍이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에서는, 홍위병을 부추겨 표적을 타도하는 사태가 빈발했다. 한편, 시진핑 국가주석의 「반부패 캠페인」은 "정적 축출"이 목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문화대혁명과 반부패의 유사성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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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대혁명 무렵에 문제가 된 것은 당 간부들의 '특권'이었다.
특권은 분명히 있었다. 우선 당직자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 식량이나 의류, 주택, 거주지역부터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 아이는 간부 전용 보육원에 다니곤 했다. 혁명 초기는 현물을 보급하던 세상인데ㅡ . 배급의 대우가 달랐다.
그러면 공산당 간부는 혁명을 위해 간부를 하고 있는지, 공산당 간부에게만 허용된 특권을 목적으로 간부를 하고 있는지 점점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런 간부를 괜히 싫어하고 미워하였다. 자본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면서 자기는 제쳐 놓고 남 비판만을 하였다. 그래서 홍위병을 부추겨 타도한 것 같다.
그 타도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공산당 간부 전원에게 한 명씩 만들어졌던 '個人档案'입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퍼스널 도큐먼트(Personal document). 홍위병은 목적한 간부의 사상이나 작풍을 공격하고 싶어도 재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몰래, 「档案」의 내용을 배운다. 간부의 档案을 볼 수 있는 것은 더 윗선 간부이기 때문에 당내 투쟁에서 정적을 타도하기 위한 도구가 된 것입니다.
*당안(档案)은 중국에서 사람들이 각종 사회활동에서 직접 만들어진 각종 형식의 보존가치가 있는 기본적 기록을 말한다.
◆ 문혁(문화혁명)의 실체는 '당의 분열'이었다
하시즈메: 이 「個人档案」은 공산당의 꽤 오래된 시기, 아마 신중국의 설립보다 훨씬 전, 국민당과 합작하거나 투쟁하던 시기부터 있었다. 당원 전원에 의해 만들어져 국민당의 간첩에 대항하고 공산당의 조직을 방위하는 데 이용되었다.
거기에는, 친척이 국민 당원이다(그런 예는 많다)라든지, 출신이 지주라든지, 자본가라든지, 과거에 이런저런 사건사고를 일으켰다든가, 이런 공적이 있었다든가, 모든 것이 죽 적혀 있다. 이것을, 공산당의 档案官 등으로부터 입수해, 고위 간부가 홍위병에게 내용을 누설한다. 그러면 홍위병은 간부 집으로 몰려가 너희 아버지는 자본가일 거야, 너희 동생은 대만에 갔겠지, 넌 대학에서 좋은 신분이었지 않느냐는 등의 말로 욕을 하고 온 집안을 때려 부수고 난동을 부려 참기 힘든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이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이었다.
홍위병의 이런 공격은 당의 고위 간부에게 협조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즉, 실태는 특정 간부를 표적으로 삼아 욕보이며 타도하는 당의 분열이었다.
문화대혁명을 '당의 분열'로 보면 시진핑의 권력투쟁과 비슷한 점이 있다. 시진핑의 경우 타도하고 싶은 간부가 있다면 그 이유로 사용되는 것은 '권력남용(부정부패)'이다.
부패의 경우 홍위병 대신 활약하는 것은 당 기율검사위원회 등 비밀경찰 조직이다. 이 위원회는 당 중앙에 있고, 각 성(省)과 시(市)에도 있다.
대체로 당 간부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부수입이나 중대한 규율 위반 등 찾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원청인 시진핑이 마음만 먹으면 자의적으로 누구든 붙잡아 위반을 물어 정치생명을 끊을 수 있다.
문화대혁명은 그렇게 세련되지 못해 아마추어 홍위병을 동원해 비밀에 부쳐진 신상정보로 들고 흔들었다. 당을 위해 필사적으로 일해 온 양심적이고 성실한 당원들까지 대거 타도되고 말았다. 이것이 더 죄가 무겁다고 할 수 있다. 타도된 사람들에게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부패의 적발은 운이 나쁜 사람이 붙잡혔을 것 뿐인 것 같지만, 그래도 본인에게 뭔가의 책임이 있다. 그것이 바로 문혁과의 차이점이다.
지금도 档案은 존재하지만, 문서가 아니라 디지털화된 것이고, 그 사용법은 정말 자의적이다.
문화대혁명에서도 마오쩌둥 혹은 그 주변이 정적들의 档案에 근거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설하여 홍위병들을 통해 타도한 것이다. 바로 권력투쟁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시진핑의 권력투쟁과 겹쳐진다. 2012년 당 총서기에 취임한 직후부터 반부패 캠페인을 전개해 '호랑이도 파리도 퇴치하라'는 대호령 아래 1기 5년간 25만 명이나 되는 당원·간부를 체포·처분되었다.
충칭시 당위 서기 보시라이, 군 수장 쉬차이허우,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저우융캉까지 타깃이 돼 실각했다. 그러한 정적을 모조리 내쳤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반부패 투쟁은 문혁과 닮았다는 해석이 성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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