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왜 항상 여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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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영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왜 항상 여성일까?

by 소식쟁이2 2022. 9. 2.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왜 항상 여성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경제·군사적 대두와 대만·홍콩을 둘러싼 긴장, 트럼프 전 대통령의 움직임을 둘러싼 미국 정치의 동요, 그리고 일본에서 선거 기간 중 일어난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습 사건…… 이런 것들을 보고 '이대로 민주주의는 괜찮은가'라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자유로운 선거, 비폭력 논란, 권력남용이 없는 정치와 국민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있는 가운데 경제발전과 같은 민주주의가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는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 결정할 수 없는 풍요를 가져오지 않는 끝없는 논쟁이 계속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제적이더라도 결단력과 행동력이 있는 강한 리더가 좋다고 생각하는 나라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 체제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한의 21세기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중요한 것은 과거 민주주의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4000년의 과거사가 있었고, 때때로 붕괴되어 그때마다 진화를 거듭하며 나아갔다. 해외에서 발간된  『세계에서 가장 짧고 알기 쉬운 민주주의 전사』는 현대에 이은 확실한 민주주의 역사를 콤팩트하고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의 저자, 존 킨 교수가, 서구의 가치관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 뉴트럴한 표현으로 말한 내용이다.

● 민주주의 역사에는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있다

놀랍게도 민주주의는 그 내부에 후세를 탐내는 사람들조차 풀지 못하는 옛적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는 고대에서도, 현대에서도 여성으로 묘사된다.

수단의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를 실각시킨 2019년 항의 자리에는 흰색 토브를 입은 알라 살라가 있었다. 그는 시위자들에게 쾌활한 춤을 선보이며 존엄을 되찾기 위해 일어서자고 당부했다.

지난 여름 홍콩에서 일어난 중국 정부의 지배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폭동에서는 헬멧을 쓰고 고글과 가스마스크를 쓰고 막대기와 우산을 쥔 4m 민주주의 여신상이 등장했다.

1989년 베이징 톈안먼 사태에서는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이 디자인한 횃불을 든 민주주의 여신이 세워졌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 화가 체자레 리파(1555~1622년경)는 민주주의를, 석류-사람들의 단결의 상징과도 같은 뱀을 손에 쥔 농부로 묘사했다. 또 아테네 시민(전원이 남성이다)이 전제에 반항하고 자신들이 제정한 법률 아래 집회를 열 권리를 행사했을 때 데모크라티아라는 여신이 추앙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20세기 고고학자의 손에 의해 발굴되고 있다.

이 데모크라티아에 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다. 다만 아테네 시민들이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뜻하는 명사로 200년 가까이 사용했던 단어(demokratia)가 여성형이었다는 점은 알려져 있다. 또 민주주의 아테네에는 여신-혼인과 모성을 거절하고 남성의 희망과 불안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힘을 부여받았다는 강력한 뒷받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 행태를 여성형으로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민주주의 자체가 신성한 힘을 가진 여성과 연관돼 있었다. 데모크라티아는 추앙받고, 두려워하고 있으며, 아테네의 남성을 생사여탈하는 힘을 가지는 초월한 존재였다. 아테네 군선 이름이 그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도, 건축물이나 공공장소에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거대한 신전이 그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언덕 기슭에 위치한, 아고라라고 불리는 광장의 북서쪽 구석에는, 제우스·엘레우텔리오스(해방자 제우스)의 스토어(열주가 있는 복도가 있는 건축)로서 알려진, 사원이 있었다. 내부장식은 매우 호화롭고 코린트의 예술가인 유프라놀의 손에 의한 민주주의와 시민의 장엄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어떻게 그 그림들을 그렸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림은 현존하지 않지만 민주주의와 신성한 것의 밀접한 연결, 그리고 여신이 자신들의 정치 형태를 지켜주고 있다는 아테네 시민의 신념이 맡은 중요한 역할을 말해준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데모크라티아의 이미지를 보면 그 신념이 잘 드러난다. 비석에 새겨진 한 법률문 위에 데이모스(민중)를 나타내는 수염이 난 고령의 남성을 경애하고 보호하는 여신이 새겨져 있다.

여신 데모크라티아는 숭배자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모았고, 그녀의 지성의 장소가 아고라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만약 그것이 진실이었다면 돌제단이 놓여 있었을 것이다. 시민들이 여성 제사장 밑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빵과 와인, 꿀, 염소, 어린 양 등이 진상되었을 것이다.

여신에게 적절한 경의를 표할 수 있도록 의식을 관장하는 여성제사는 아마도 신관과의 협의를 거쳐 아테네 유력자의 가계로부터 (혹은 추첨에 의해) 선발되었다.

남성사회에서 여성제사는 모독을 용납할 수 없는 신비한 권위를 걸치고 있어 모독할 경우에는 홀대, 중상, 추방, 사형 등의 벌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 그 대가로 여성제사는 민주주의 아테네에 액운이 끼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의식에는 적절한 결과가 수반되어 민회[고대 그리스 시민참가 의결기관]에서 부정행위--예를 들면 저명한 시민에 의한 어리석은 결단--이 있으면 올리브의 흉작, 불법조업, 민주주의 자괴 등의 보복 위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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