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이 몸값을 들고 낙하산으로 사라진 완전범죄 'd.b.쿠퍼 사건' 45년 만에 FBI가 마침내 자발적 수사를 종료
1971년 발생한 미제 사건 'd.b.쿠퍼 사건'에 대해 FBI가 실질적인 수사 중단을 발표했다(2016년). 사건은 45년째로 거의 미궁에 빠진 상태였다.
◆항공기 납치(Hijack) 발생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71년 11월 24일. 이날 미국 포틀랜드 국제공항에서 '댄 쿠퍼'라고 밝힌 남성이 검은색 어태셰 케이스를 들고 보잉 727-100으로 운항되는 노스웨스트 오리엔트항공 305편 시애틀행에 탑승했다.
14시 30분쯤, 총운항거리의 3분의 1이 지난 무렵에 쿠퍼는 객실 승무원 플로렌스 샤프너에게 메모를 건넸다. 샤프너가 전화번호를 준 것으로 알고 접힌 메모를 그대로 자신의 가방에 넣자 쿠퍼는 아가씨, 나는 폭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진위를 확인하려고 샤프너가 폭탄을 보여달라고 하자 쿠퍼는 아타셰 케이스 안에 8개의 빨간 폭탄 같은 것과 케이블류, 그것과 연결된 원통형 배터리가 들어 있는 것을 보여줬다. 쿠퍼의 요구는 몸값 20만달러와 낙하산 4개(그중 2개는 예비), 그리고 시애틀 도착시 비행기에 주유할 준비를 갖춰놓는 것이었다.
샤프너는이 이 요구를 윌리엄 스콧 기장에게 전달해 기장에서 시애틀 타코마 공항의 항공교통 관제로, 또 지방당국과 연방당국에 정보가 전달됐다. 노스웨스트 오리엔트항공의 도널드 뉴로프 사장은 쿠퍼의 요구대로 몸값 지불을 받아들여 몸값과 낙하산을 준비하는 동안 305편을 퓨젯만 상공에서 대기시켰다.
이때 샤프너는 쿠퍼가 타코마가 눈 밑에 보인다. 매코드 공군기지는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서 차로 20분 정도라고 발언하는 것을 들었다. 쿠퍼의 인물로서의 인상은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말투가 공손하여 당시 생각되었던 납치범의 전형적인 타입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느꼈다고 한다. 역시 승무원으로 305편에 탑승했던 티나 맥크로도 냉혹하거나 짓궂은 인물이 아니라 시종일관 사려 깊고 냉정했다고 말했다. 이 인물상대로 쿠퍼는 시애틀에서 비행기 착륙 중에 승무원을 위해 식사를 받을 것으로 하고 요청했다고 한다.
◆시애틀서 승객 석방 후 재이륙
305편은 17시 39분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 도착. 쿠퍼는 승객 전원과 샤프너, 객실 승무원 앨리스 핸콕를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여기서 쿠퍼는 크루에게 실속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인 100노트(시속 190km 정도)로 고도 3000m를 유지해 멕시코시티 방향으로 남동쪽으로 날아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때 비행 중에도 랜딩기어를 꺼낸 채로 둘 것, 플랩은 15도로 낮출 것, 객실은 여압하지 말 것, 뒷문은 열어두고 에어스티어(승하차용 계단)도 들러낸 채로 두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이 기체의 항속거리는 약 1600km로 멕시코시티 방향으로 가더라도 멕시코로 들어가기 전 한 차례 급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쿠퍼는 승무원과 상의한 뒤 네바다주 리노에서 한 차례 착륙하는 것을 허용했다. 후방 에어스티어를 켠 채 이륙하는 것에 대해서는 노스웨스트 오리엔트항공 본사 측에서 위험하다며 반대 의견이 나왔고 쿠퍼는 "완전 안전하다"고 반박했지만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19시 40분 305편은 쿠퍼, 스콧 기장, 부조종사 윌리엄 라탁작, 항공사 HE 앤더슨, 객실 승무원 맥크로 등 모두 5명만 태우고 시애틀 타코마 공항을 재이륙했다. 매코드 공군기지에서 날아오른 2대의 F-106이 쿠퍼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305편의 위아래로 날았다. 이 이륙 후 맥크로는 쿠퍼가 허리에 뭔가를 부착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20시경, 305편의 콕핏으로 후부에어스티어의 동작을 나타내는 램프가 점등. 기압의 변화도 있었기 때문에 승무원은 뒷문이 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승무원은 통화장치로 에어스티어의 호출을 하였지만, 곧바로 끊어졌다고 한다.
이 후 20시 13분쯤 기체 후부가 갑자기 위쪽으로 튀어 올랐다. 이 움직임은 기장이 기체를 수평으로 되돌리기 위해 조작이 필요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305편이 쿠퍼와의 합의대로 네바다주 리노에 도착한 것은 22시 15분. 이때 후방 에어스티어는 나간 채였고 비행기를 둘러싼 리노 경찰은 쿠퍼가 없는 것을 즉각 확인했다.
◆잠적한 쿠퍼
쿠퍼는 20시 13분 낙하산을 착용하고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한다. FBI가 91kg의 더미를 이용해 실험한 결과 20시 13시에 발생한 기체의 충격이 쿠퍼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때도 2대의 F-106은 305편을 추적하고 있었지만, 어느 조종사도 육안 레이더로 누군가가 뛰어내린 모습이나 그 후에 전개되었을 낙하산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쿠퍼는 흰색 셔츠에 다크 슈트, 검은 비옷, 로퍼, 검은 넥타이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정확히 지난 20시 13분쯤 305편은 워싱턴주 남서쪽을 흐르는 루이스 강 상공을 폭풍 속에 날고 있었습니다, 비행 경로의 위치와 고도가 약간 다른 것만으로도 쿠퍼의 착지 포인트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어디를 탐색해야 하는지 FBI는 괴로워하게 되었다. 결국 FBI는 시애틀에서 리노까지 비행경로를 따라 오리건 주군의 고정익기와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탐색을 벌였지만 작은 플라스틱 조각 외에 납치와 관련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 중에 FBI와 현지 경찰은 즉각 연루되는 용의자로부터 조사를 개시했다. 그 용의자 중 한 명이 오리건주에 사는 d.b.쿠퍼라는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곧바로 용의자 명단에서 빠졌는데, UPI통신 클라이드 자빈 기자와 AP통신 조 프레이저 기자가 탑승자 명단에서 사용된 '댄 쿠퍼'와 용의자 명단에 들어 있던 'd.b.쿠퍼'를 혼동해 보도한 결과 'd.b.쿠퍼'라는 이름이 더 퍼졌고 사건 자체도 'd.b.쿠퍼 사건(d.Cooper hijacking)'으로 불리게 됐다.
쿠퍼의 발자취로는 모든 번호가 남겨져 있던 몸값으로 지불한 지폐를 쫓는 방법도 취했지만 좀처럼 이 지폐는 발견되지 않았고, 1972년 초 존 미첼 법무장관은 번호를 일반인에게 공표했다. 이 때문에 같은 번호의 20달러권을 위조해 납치범으로 자칭하며 주간지 뉴스위크 기자를 속이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지폐다발의 발견
1978년 305편의 에어 스티어를 강하시키기 위한 지시를 담은 메모가 워싱턴주 캐슬록 동쪽 21km 숲길에서 사냥꾼에게 발견되었다.
그리고 1980년 2월 가족과 함께 캠프파이어를 하려던 브라이언 잉그램이라는 8살 소년이 몸값 일부를 발견했다. 장소는 워싱턴주 밴쿠버(아래 이미지 오른쪽 아래)에서 컬럼비아강(오레곤주와 워싱턴주의 경계)을 따라 14km 내려간 곳이다.
발견된 돈다발은 3개로 소년이 캠프파이어를 만들 목적으로 강둑에서 긁어모으는 바람에 많이 변형된 상태였지만 아직 고무줄로 묶인 채였다. FBI가 조사한 결과 2개 묶음은 20달러권 100장이 그대로이고 다른 한 묶음은 90장. 순서 또한 쿠퍼에게 건넸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돈다발도 결정타가 되지 않았다. 원래 돈다발은 쿠퍼 내지 누군가가 여기에 두었는지, 혹은 강을 흘러왔는지 알 수 없고, 그리고 1974년에 강의 준설과정에서 강바닥에서 건져 올라왔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카우리츠 카운티 보안관에서는 쿠퍼가 아직 에 스티어 상에 있을 때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덧붙여 이 돈다발 중 14장은 FBI가 보존하고 나머지는 1986년에 잉그램과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의 보험업자들에게 분배되었다. 잉그램은 2008년 소유하고 있던 지폐 중 15장을 경매에 부쳐 약 400만엔에 매각했다.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9710장의 지폐는 전세계 어디서나 사용된 흔적이 없다.
주변 지역에서는 여러 차례 낙하산 등이 발견된 적이 있지만 모두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문가들은 1980년 발생한 세인트헬렌즈산의 폭발로 남아 있던 물리적 증거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21세기 수사
21세기에 들어서도 수사는 길게 이어졌다.
몇 안 되는 증거품 중 하나인 넥타이핀에서는 2001년에야 3개의 유기체 샘플을 얻을 수 있었고 부분적인 DNA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 유기체 샘플이 쿠퍼의 것이라는 증거가 없어 누구의 DNA인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또한 쿠퍼에게는 2개의 낙하산과 2개의 예비 낙하산이 배달되었는데 좋은 것은 '아닌' 것으로, 추가한은 예비 낙하산은 낙하산을 모았을 때 우연히 섞인 더미(연습용)의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더미라는 것은 스카이다이빙 경험이 있으면 알 수 있는 것으로,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예비 낙하산은 돈을 채운 가방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3월, FBI는 고생물학자 톰 케이 등에 의한 「쿠퍼 조사팀」을 결성했다. 그 팀은 1971년 당시 수사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근대적인 장비로 사건에 도전해 쿠퍼가 착용했다는 넥타이를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해 히카게노카즈라의 포자와 비스무스, 알루미늄 조각을 발견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순수 티타늄 입자도 발견되었다. 사건 당시 지금과 비교해 티타늄은 희귀한 존재로 금속제작이나 생산설비, 부식성 물질을 보관할 필요가 있는 화학업체 등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톰 케이는 쿠퍼는 화학자·야금학자·금속메이커나 화학메이커의 엔지니어나 매니저, 또는 그러한 회사로부터의 스크랩을 취급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용의자까지는 찾지 못했고, 이번에 FBI는 쿠퍼 사건을 맡았던 수사원들은 보다 더 중요한 사건으로 돌리기로 하고 자발적 수사 활동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FBI에 따르면 완전히 수사를 종료했다거나 수사를 중단했다는 것은 아니며, 낙하산이나 몸값과 관련된 물증에 대해서는 계속 찾을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FBI-Update on Investigation of 1971 Hijacking by d.b.Cooper
https://www.fbi.gov/seattle/press-releases/2016/update-on-investigation-of-1971-hijacking-by-d.b.-cooper
d.b.Cooper case no longer actively investigated by FBI|KIRO-TV
http://www.kiro7.com/news/local/db-cooper-case-no-longer-actively-investigated-by-fbi/397251270
FBI shuts down d.b.Cooper air piracy case after 45 years - YouTube
Update on Investigation of 1971 Hijacking by D.B. Cooper — FBI
Following one of the longest and most exhaustive investigations in our history, on July 8, 2016, the FBI redirected resources allocated to the D.B. Cooper case in order to focus on other investigative priorities. During the course of the 45-year NORJAK inv
www.fbi.gov
https://www.youtube.com/watch?v=QhHJ1_8-Z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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