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유골과 예수 그리스도 가족의 무덤, 관에 새겨진 이름이 말하는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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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영

그리스도의 유골과 예수 그리스도 가족의 무덤, 관에 새겨진 이름이 말하는 '진실'은?

by 소식쟁이2 2024. 4. 11.

그리스도의 유골과 예수 그리스도 가족의 무덤, 관에 새겨진 이름이 말하는 '진실'은?

'파티오(patio. 가운데 뜰; 중정((中庭))의 무덤' 중 관이 놓인 곳.


예루살렘 남부. 아파트가 즐비한 한적한 주택가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유적. 노스캐롤라이나대 샬럿캠퍼스 교수로 기독교의 기원과 고대 유대교를 연구하는 유명한 학자이자 역사가인 제임스 테이버 박사는 이를 예수 가문의 무덤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후, 수많은 논쟁이 일어나났다.

'그리스도 처형당한(磔刑)의 현장'에 신설 학회를 깜짝 놀라게 한 한 한 고고학자의 제언에 이어 테이버 박사의 발견과 그 후의 논쟁을 살펴본다.    
*책형(磔刑), 기둥에 결박하고 찔러 죽이는 형벌

◆ 무덤, 초기 신자, 그리고 예수의 가족?
구시가지에서 남쪽으로 3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예루살렘 동쪽 타르피오트(알몬 하 네이브) 지역에서 발견된 두 무덤의 조사는 고고학회뿐 아니라 널리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논란을 일으켰다.

두 무덤은 일반적으로 '예수 가문의 무덤' 혹은 '정원(뜰)의 무덤', '파티오(patio)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테이버와 동료들은 이들 무덤의 발견이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고고학적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대적으로 공표된 야곱의 관과 함께 예수와 그의 가족,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지게 될 예수의 초기 신자들에게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된 증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파티오(patio) 가운데 뜰; 중정((中庭))
예루살렘 같은 도시에서는 고고학자들의 조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 역사적 보물이 건설공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0년에도, 바로 그것이 일어났다.
예루살렘 동쪽 타르피엇 지역에서 새 연립주택을 짓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는데, 무덤 입구 같은 것이 노출돼 버린 것이다. 무덤 바깥의 안뜰 부분은 안타깝게도 폭발로 파괴되었지만 바위를 깎아 만든 쉐브론, 둥근 심벌, 직사각형의 입구를 가진 외관을 특징으로 하는 안쪽 입구는 남았다.

콘크리트판(가운데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과 확대사진)은 현재 정원의 무덤 입구를 덮고 있다.


법으로 의무화된 대로 이스라엘 고고국 고고학자들은 신속한 조사작업과 무덤 조사를 위해 소집됐다. 그리고 1980년 3월 28일 지방 고고학자인 아모스 크로넬의 감독 아래 고고학자 조셉 가토와 엘리엇 브라운을 포함한 팀과 서너 명의 발굴자들이 발굴을 시작하였다.

최초 발굴조사에서는 발견된 6개의 매장공간 코힘(kokhim) 중 5개에 관이 있고 6피트 길이의 2개의 선반 혹은 아르코솔리아(arcosolia. 1년 뒤 뼈를 모아 관에 보관하기 전에 부패시키기 위해 시체를 진열하는 데 사용됐다)가 있다는 점, 그리고 선반 위에는 뼛조각이 있고 선반 아래 고대 바닥에는 두개골을 포함한 다른 골격 표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덤 안에는 10개의 관(骨棺)이 있었다.

이 무덤의 납골관(納骨棺)에는 예수 자신을 포함한 예수와 관련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는 보고가 언론의 주목을 받아 발견에 관한 보고서가 1996년에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많은 정보가 손실됐고 무덤 속 뼈는 아마도 정교회 종교당국에 넘겨졌거나 무기명 공동묘지로 이장됐었다.

그런데 언론이 이 무덤에 대해 가장 크게 거론한 것은 2004년 영화감독이자 조사 저널리스트인 싱하 야코보비치가 테이버를 학술고문으로 영입해 결성한 팀의 재조사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이 조사는 「타이타닉」의 제임스 캐머런이 전면적으로 참가한 것에서도 큰 화제가 되어, 「그리스도의 관(棺)-세계를 뒤흔든 새로운 발견의 전모」라고 하는 책자로 나오기도 했다.

이 무덤에 대해서는 아직 몇 가지 미해결된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했던 것은 무덤과 그 속이 역사상 예수와 그 가족과 연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무덤에 대해서는 아직 몇 가지 미해결된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했던 것은 무덤과 그 속이 역사상 예수와 그 가족과 연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Yeshua bar Yehosef(요셉의 아들 예수), Maria(마리아), Mariamene Mara(고대 자료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됨), Yosef(요셉-예수의 형제), Yehuda bar Yeshua(예수의 아들 유다)이다.

판(뚜껑)이 제거된 후 무덤으로 들어간다. 무덤 내부 입구의 디자인이 보인다.


조사원들이 무덤 갱도의 바닥에서 정면에 서자 특징적인 쉐브론과 둥근 디자인이 또렷이 보였다. 직사각형 입구는 몇 년 전 처음 조사된 이래 어떻게 이 무덤이 책과 사본으로 채워져 서고로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조사원들이 무덤 수갱 바닥에서 정면에 서자 특징적인 갈매기 무늬(chevron)과 둥근 디자인이 또렷이 보였다. 직사각형 입구는 몇 년 전 처음 조사된 이래 어떻게 이 무덤이 책과 사본으로 채워져 서고로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폐기된 책과 사본은 수년에 걸쳐 무덤 속에 쌓여 매장용 구덩이를 막고 있었다. 야훼(신)를 나타내는 인쇄된 말은 신성한 것이므로 서류는 불태우지 않고 매장된다. 사진: 윌리엄 태런트 폐기된 책과 사본은 수년에 걸쳐 무덤 속에 축적되어 매장용 구덩이를 막고 있었다. 야훼(신)를 나타내는 인쇄된 말은 신성한 것이므로 서류는 불태우지 않고 매장된다. 


이것은 이 발견물들이 예수와 그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일까? 그리고 예수의 시신이 첫 번째 임시무덤 이후 두 번째 영구적인 무덤에 실제로 안치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수가 결혼하면서 '유다'라는 이름의 자녀를 가졌을 수도 있다는 증거를 제공하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많은 학자와 교회의 권위자들이 이들 견해에 대해 격렬하게 이의를 제기해 왔다. 이들은 이런 발견물이 복음서 예수와 무관한 이유를 여러 가지 제시해 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관(骨棺)에 새겨진 이름은 위안1세기 예루살렘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름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면 분명히 그 설명에 부합하는 것도 있었다(기원 1세기 인구에 관한 알려진 데이터를 사용해 통계분석 연구를 적용하면 예를 들어 '마리아'라는 이름은 그 시대 이 지역에서 알려진 여성 이름의 거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무덤 내부에는 1년 뒤 납골당에 안치되기 전 시신을 지탱하기 위한 의자 아르코솔리아(arcosolia. 1년 뒤 뼈를 모아 관에 보관하기 전에 부패시키기 위해 시체를 진열하는 데 사용됐다)이 뚜렷이 남아 있다. 아르코솔리아(arcosolia) 아래 구덩이에는 이전 조사에서 제거된 납골당이 들어 있었다.사진 : 윌리엄 태런트

무덤 내부에는 1년 뒤 관(骨棺)에 갇히기 전 시신을 지탱하기 위한 의자 아르코솔리아(arcosolia)가 뚜렷이 남아 있다. 아르코솔리아(arcosolia. 1년 뒤 뼈를 모아 관에 보관하기 전에 부패시키기 위해 시체를 진열하는 데 사용됐다) 아래 구덩이에는 이전 조사에서 제거된 관(骨棺)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테이버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에 따르면 더 설득력 있는 분석은 한 장소의 독특한 이름 조합에 있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무덤과 그 속이 복음서에 적혀 있는 예수와 그 가족의 것일 확률은 상당히 높아진다. 다른 두 가지 큰 발견이 있으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 1만2000쪽 증언, 475쪽 평결

2002년 10월 21일 디스커버리 채널과 성서고고학협회가 공동 개최한 워싱턴 기자회견에서 2000년 전 관(棺)의 존재가 발표됐다. 관(棺)의 비문에는 아람어로 Ya'akovbar-Yosefakhui di Yeshua라고 쓰여 있었고, 영어로 '예수의 형제, 요셉의 아들 야곱'이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이것이 정말 복음서에 등장하는 야곱, 즉 예수의 동생이자 예수 사후 예루살렘에서 초기 기독교 운동의 지도자였던 야곱의 관(骨棺)이라고 가정하면--.이 발표는 실제로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켜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이 일련의 사건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납골당과 새겨진 비문.

그러나 이 관(骨棺)은 관리된 고고학적 조사가 아니라 골동품 시장에서 출현한 것이었다. 2003년 이스라엘 고고국이 실시한 일련의 조사에 의해 제임스의 관(骨棺)은 위작이라고 단정지었다. 이 상자의 수집가이자 소유주였던 오데드 골란은 44건의 위조, 사기, 기만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7년에 걸친 120회에 걸친 재판 결과의 판사는 126명의 증인과 수십 명의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1만2000쪽에 이르는 증언을 작성해 결국 475쪽에 이르는 평결을 내렸다.

오늘날 야곱의 관(骨棺) 자체가 진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비문, 특히 예수 형제 부분의 진위 여부는 아직도 학자들의 논란거리다. 그러나 많은 학자/과학자들이 비문 조각 속에 진짜 고대의 파티나(대상물이 오래됨에 따라 물질의 표면에 형성되는 얇은 생물화학적 층)가 발견되었다는 관찰을 지지하고 있으며, 적어도 연대에 대해서는 비문의 행 전체가 진짜임을 보여주고 있다. 

◆ '정원의 무덤'과의 관련은?

그렇다면 이것이 정원의 무덤과 어떻게 관계가 있는 것일까?
「많은 관계가 있다」라고 테이버는 말한다. 테이버는 예로 제임스의 납골관(納骨堂)이 실제로 이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결론지은 2006년 연구를 들었다. 이 연구는 최근 발표되어 큰 화제를 모은 것이다. 이스라엘 지질학회의 암논 로젠펠드가 이끄는 과학자 팀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졌다. 꼼꼼한 검사 결과 관(骨棺)에 새겨진 글씨 안쪽에서 발견되는 고대 파티나는 분명 진품이며 비문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 연구에서 과학팀은 정원의 무덤을 포함한 14개 다른 매장 동굴의 납골관과 동굴 내부 표면에 부착된 파티나의 화학조성에 대한 비교시험과 평가분석도 실시했다.
"비교 시험은 관(骨棺)이 지난 2000년간 존재했던 동굴의 환경을 바탕으로 특징적이고 측정 가능한 생화학적 '사인(sign)'을 축적한다는 전제에 기초했다"고 테이버는 말한다. 서로 근접한 두 동굴에서조차 서로 다른 화학적 특징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관(骨棺)은 정원의 무덤 벽과 천장의 화학적 특징을 포함해 정원의 무덤에서 조사된 관(骨棺)과 똑같은 화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테이버에 따르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임스의 관(骨棺) 화학조성은 다른 13개 분묘의 관(骨棺)과는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테이버와 연구자들에 따르면 야곱의 관(骨棺)은 원래 정원 무덤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언제, 어떻게 무덤에서 분리되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예수 무덤의 다른 납골관과 비교하여 납골관 표면의 풍화를 조사한 결과, 아마도 고대에 약탈당했겠지만, 적어도 200년간은 무덤에서 잃어버렸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테이버(이 주장은 테이버 혼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에 따르면 야곱의 관(骨棺)을 정원 무덤의 유물과 이름의 고리에 추가함으로써 이 무덤이 예수와 그의 가족일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거의 확실하다.

이는 이 무덤이 실제로 예수와 그 가족의 무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까?

테이버는 이 무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통계만이 탈피오트의 무덤이 예수의 무덤임을 일방적으로 증명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는 흔히 말하는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무덤이 예수라는 이름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오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아직 계속되는 것이 있다.......

이 자료는 「Popular Archaeology」에 발표된, Dan McLerran에 의한 「The Jesus Family Tomb」 내용이다.
https://popular-archaeology.com/article/the-jesus-family-tomb/

 

Popular Archeology - The Jesus Family Tomb

The discoveries that rocked Christian scholarship.

popular-archaeolog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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