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아있는 키신저의 현실주의 외교
본문 바로가기
시사, 경영

아직도 남아있는 키신저의 현실주의 외교

by 소식쟁이2 2023. 12. 11.

아직도 남아있는 키신저의 현실주의 외교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23년 11월 29일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키신저는 미 외교에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이며, 미 언론에는 그 공과에 대한 논평이 많이 나와 있다. 여기서는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의 11월 30일자 사설 'The lessons from my 40-year conversation with Kissinger'를 정리한 내용이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키신저의 전기기록자들은 그의 사고양식을 형성하는 일종의 로제타 스톤(이정표. Rosetta Stone)을 1954년 그의 하버드대 박사논문에서 오래전에 찾았다. 논문은 3년 뒤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s of Peace, 1812-1822."(복원된 세상: 메테르니히, 캐슬레이와 평화의 문제)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주제는 나폴레옹 전쟁을 끝내고 유럽에 한 세기 가까이의 상대적 평화를 가져다 준 1815년 빈 회의를 둘러싼 외교다. 당시의 현상유지 대국 (영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가 대두하는 강대국(혁명 이후 프랑스와 독일)을 어떻게 봉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며,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외무부 장관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백작이다. 나중에 부정하고 있지만, 메테르니히는 젊은 날의 키신저에게 본보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메테르니히의 승리는 수십 년간 지속되는 안정을 위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것은 키신저의 외교 경력을 통한 목표이기도 했다. 그의 주요 과제는 소련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데탕트' 로 알려진 군비관리 협상과 개인외교를 통해 진행되었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개방을 획책했고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으로 결실을 맺었다. 키신저의 외교는 메테르니히의 외교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도덕적이지 않았다. 안정은 그 자체가 목표였다.

국익에 관한 현실주의는 정책 입안자들의 유일한 신뢰할 수 있는 지침이었다. 이상주의는 해결하는 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평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전쟁꾼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키신저는 '무질서한 정의와 부정한 질서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항상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키신저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런 통렬한 현실정치로의 심취 때문이다.

키신저는 '평화'는 키메라(합성괴물)일지 몰라도 공공연한 분쟁을 피하기 위한 지역의 안정적인 세력균형은 달성 가능하며 더 바랄 나위도 없다고 생각했다.

키신저는 일관되게 국가 간 세력균형과 정밀한 관여를 통해 무엇보다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전쟁을 회피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을 단번에 진행하지 않고 점진주의를 취하면서 국가간의 관계를 관리한, 대소련을 겨냥한 공산주의의 중국과의 관여, 소련과의 데탕트라 불리는 군비관리 협상,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중동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관여 등 키신저의 역사적 공적은 이러한 현실주의 사고양식 덕분이다.

한편 키신저의 점진주의는 과도한 목표라는 폐해를 배제하는 한편 관여 부족에 빠지기도 했다고 지적된다. 이그네이셔스도 지적했듯이 키신저 외교는 분명 부도덕하다. 흔히 비판받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독재체제를 용인하거나 지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때는 가혹한 탄압이 보고된 파키스탄 정부를 지지했는데, 이는 파키스탄 정부가 미중 관계를 중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3년 칠레 공산주의 아옌데 정권 타도 쿠데타 연루로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또 키신저 외교에는 강대국 간 세력균형을 중시한 나머지 소국을 희생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키신저가 말하길 인류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대국 간 핵전쟁 회피를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교훈을 계속 배워야 한다. 인권, 인도주의, 국제적 법의 지배라는 가치관이 훨씬 중시됨과 동시에 정보의 확산이 규모에서도 속도에서도 비약적으로 확대된 현대에 있어서는 「비도덕」을 철저히 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외교정책을 효과적이고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에 올바름 이야기를 어떻게 설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관점도 필수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틀로서 현실주의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국가 간 힘의 균형은 여전히 국제질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며,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키신저의 교훈을 계속 배워야 한다.

키신저는 일본의 핵무장이 35년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키신저의 대중국 자세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친중 자세는 심했지만 그뿐만 아니라 냉전 이후에도 많은 미국 지도자들이 대중국 유화적 자세를 계속한 것은 도덕적 관점뿐만 아니라 현실주의 관점에서도 의문이 든다. 그것은 현상유지의 대국(미국) 이 대두하는 대국(중국)을 과소평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 미국의 대중정책은 상당히 강경해져 더 이상 크게 되돌아가기는 어렵다.

*재미있거나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 꾹 눌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