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앞날을 알아맞힌 미래학 ... 시대를 앞서간 4명의 권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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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경영

소련의 앞날을 알아맞힌 미래학 ... 시대를 앞서간 4명의 권위자

by 소식쟁이2 2022. 7. 16.

소련의 앞날을 알아맞힌 미래학 ... 시대를 앞서간 4명의 권위자

<'미래학'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미·소 냉전과 핵전쟁의 위협. 혼란스러운 시대를 내다본 네 사람의 공적으로 현대 세계정세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20세기는 미래학의 확립기였다. 동시에 미래는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그 명암을 둘러싸고 흔들리는 요람기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미래학의 진전을 위해 필수적인 SF작품과 글이 잇따라 발표됐다. 미래학의 지반을 굳힌 주요 인물로서
· 허먼 칸
· 피터 슈워츠
· 앨빈 토플러
· 아서 클라크
등이 있다. 4명의 공적이나 저작을 접하면서 미래학의 현 시점에 이르는 여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작품과 사상이 지지를 모았던 1960~1980년대는 미·소 냉전의 한복판에 있었다. 핵보유국끼리 서로 노려보며 콜드워가 핫워가 될 수도 있는 매우 위태로운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풍운이 급박해 전쟁의 불길이 치솟은 오늘날의 국제정세와 어딘가 비슷하지도 않는가.

당시 퓨처리스트들은 앞날이 불투명한 시대에 사람들의 불안감을 공연히 부추기지 않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다양한 데이터와 과거 트렌드에서 다각도로 짚어냈다. 그들의 충언, 미래 예측은 당시 사람들에게 모종의 안정감을 주었다.

감염증이나 전쟁의 화가 확산되면서 몇 달 앞날의 미래조차 내다볼 수 없는 지금의 세계정세를 읽는 데도 많은 시사점이 있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SF의 거장 H G 웰스(1866~1946년)는 1895년 타임머신, 1901년 안티시페이션스와 20세기의 시작을 전후해 희망찬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말년인 1945년에 발표한 저작은 마음의 종언(원제: Mindat the End of Its Tether)이다. 희망과는 달리 비창감이 제목부터 쏟아지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두 번의 세계대전이다.
원자폭탄 투하로 인류의 미래는 한없이 절망으로 다가왔다. 과학기술의 비인도적 사용은 웰스의 희망적 미래론을 깨뜨린 것이다.

웰스는 마지막 작품을 쓰기 30여 년 전 원폭이 무자비하게 사용되는 음산한 미래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기도하며 예견했었다. 그러나 그 경종도 허무했고 인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다. 실의 속에 웰스는 1946년 숨을 거뒀다.

미래학은 제2차 세계대전을 사이에 두고 지금까지의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는 역할에서 미·소 냉전이라는 잔혹한 국제정세에 정면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전략을 제창하는 역할로 전환해 갔다.

<허먼 칸(Herman Kahn)>
1960년 상재한 데뷔작 열핵전쟁(원제 On Thermonuclear War)이라는 제목의 상징처럼 하만 칸(19221983년)의 미래학·미래연구 기법은 당초 미·소 냉전의 영향을 짙게 반영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기술혁신은 전쟁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될 것으로 예견하고 그 속도를 잘못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평화를 둘러싼 핵에 대해 논한 이 책은 물의를 빚었고 비판적인 시각도 상당했다.

칸은 이후 군사적 시각에 기초한 미래의 예측, 분석을 점차 비즈니스에 응용하게 되면서 미래학, 미래연구를 체계화해 나갔다. 델파이법과 시나리오 플래닝, 백캐스팅 등 현대 미래학의 기초적인 메소드로지의 소지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67년에 저술한 『기원 2000년』(원제: The Year 2000)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미래학 붐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칸은 미래학·미래연구 기법을 비즈니스에 접목해 일반화시킨 일등공신 중 한 명이다.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
미래학 비즈니스 맥락에서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로는 영국 로열더치 셸(현재는 셸)에서 미래연구 부문을 주도한 피터 슈워츠(1946년)가 꼽힌다.

1980년대에 그린 소련 붕괴를 전망한 자원전략 시나리오의 선견성은 후세에 길게 구전되고 있다. 제4차까지 계속된 중동전쟁 등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지역 이외로부터 안정되고 저렴하게 석유 천연가스를 매입하는 길을 소련의 역내 정세의 변화를 근거로 제시했다.

당초 슈워츠의 시나리오는 소련이라는 공동체를 전혀 모른다는 사방에서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를 보란 바로 이 일로 셸은 소련 붕괴를 전제로 한 슈워츠의 전략 시나리오에 힘입어 훗날 석유 비즈니스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슈워츠 이외의 많은 전문가들도 소련 붕괴 가능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능성이 낮다며 충분한 대비나 제언을 해오지 않았다. 반면 슈워츠는 붕괴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그려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슈워츠와 셸의 승인은 거기에 있다.

그리고 미래학의 요체도 거기에 있다. 즉 어떤 시나리오도 무수히 있는 일어날 수 있는 미래(futures)의 하나로 경시, 배제하지 않고 대비하는 시점이다.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와도 친분이 있던 슈워츠이다. 후에 셸로부터 독립해, 미래 연구에 점점 기울어지게 된다. 미래의 비즈니스 환경을 예측하는 1인자로서 그 지위를 부동화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세계에서 가장 고명한 미래학자 퓨처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앨빈 토플러(19282016년)이다. 저서를 읽은 적이 없더라도 미래의 충격(원제 Future Shock, 1970년)이나 제3의 물결(원제 The Third Wave, 1980년)이라는 책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자란 토플러는 대학 졸업 후 금속주조 수리공이나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상품이 대량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에 대한 의문을 몸으로 느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신문기자, 칼럼니스트, 컨설턴트 같은 이색경력을 거친다.

미래의 충격은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넘는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정보화 사회를 예견하고 멋지게 알아맞힌 제3의 물결도 40여 년 전의 간행된 책이면서도 아직도 여전히 시사적이다. 인류에 의한 농업의 발전이 제1의 물결, 산업혁명이 제2의 물결, 그리고 제3의 물결로서의 정보화 사회. 이 뒤를 따라 세계는 제4의 물결이 있다면 무엇일까. 디지털화를 그것이라고 부르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변화는 더 큰, 인간의 본연, 삶의 방식을 뿌리부터 뒤집는 태동이 아닌가. 뇌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동식물과의 대화--검토해야 할 논점은 많다.

<아서 클라크(Arthur Clarke)>
소개하는 마지막 한 사람은 SF작가 아서 클라크(1917~2008년)다. 그 이름을 몰라도 영화 2001 우주여행(원제 2001: A Space Odyssey)이라면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클라크가 각본을 맡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 아래 1968년 영화화됐다. 클라크의 동명의 소설은 영화 개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행됐다.

호모사피엔스의 조상인 원시적인 인간 원숭이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의문의 돌기둥 모노리스. 영화는 인트로 장면으로 보는 이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SF이면서도 진실된 묘사는 현실 이상으로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세기도 전에 이런 작품이 찍은 기술력, 창의력은 물론이고 씩씩한 상상력에 경악할 뿐이다.

리얼리티가 넘치는 묘사는 클라크와 우주인의 친분으로부터 나온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세계를 생각하는 데 상상력을 북돋워 주는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작품뿐 아니라 시공간을 넘어서는 세계를 그린 클라크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우주비행사나 과학자, 혹은 영화감독은 수두룩하다. 클라크는 로봇 3원칙을 세운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계의 빅 쓰리로 통칭되고 있다.

이러한 20세기 후반에 두각을 나타낸 퓨처리스트의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채색되어 미래학은 점차 실사회에서 응용되면서 확실한 지반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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